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작업을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고요한 시간,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시며 맨발로 땅을 디디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내게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가로등조차 한적한 시골의 밤은 동공을 있는 힘껏 확장시키고 별을 헤아릴 만큼의 시간동안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구의 자전을 체감하는 듯 하고 별들 가득한 우주의 한 가운데 떠 있는 듯 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그러한 나만의 새벽 의식은 불현 듯 하나의 작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의 지각과 관념 속에서 작품이 떠올랐다기 보다는 저 멀리 있는 존재가 내게 화답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정도로 떠오른 이미지는 강렬하고 분명하며 나를 넘어서는 것임에 틀림없다.
거친 바람 속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머리카락과 옷가지를 한쪽으로 날리는 강한 바람을 오롯이 맞으면서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초연한 모습으로 내면과 소통하는 그/그녀는 어둠 속에서 더욱 확고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주변이 어두워지는 고요함이 찾아오면 그/그녀의 그림자는 정확한 원을 만들어 낸다.
온 몸을 휘청거리게 만드는 거칠고 강한 바람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평화와 창조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태어나서 그가 속한 세상의 흐름에 시달리고 찌들다가 죽음에 이른다. 그렇지 않은 몇 몇의 선각자들은 속세의 바람에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열고 영혼의 성장을 실현하며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왜 태어나서 삶을 허락 받은 것일까?
그 삶이 아귀 놀음 같은 지옥의 것이 되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완성에 이르는 길이 되기도 하는 것을 우리는 안다.
속세에 찌들어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쫒는 삶은 피곤하고 비루하며 무의미한 시간으로 가득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이고 보다 깊이 있는 체험과 창조를 추구하는 자세로 일관한다면 사랑과 진리와 자유를 경험할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지옥과 천국으로 오갈 수 있다.
누구나 충만한 삶을 원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어느새 자리 잡은 습관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궁극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과거의 습관으로 움직이거나 앞으로의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깨어있는 방법뿐.
지금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과거에 쌓인 습관이나 흐름에 의지한 것인지 아니면 존재의 성장을 위해 현재에 깨어 있는지 돌아보는 것만이 삶을 경이롭게 만들 수 있다.
거친 바람에 시달리고 있지만 자신의 내면을 깊이 바라보고, 나를 둘러싼 두려움의 원천을 직시하며 이를 떨치고, 숭고한 삶을 향해 나아가 완전한 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나와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계이다.
그리고 신이 인간에게 바라는 지점일 것이다.
‘신의 바람’은 인간의 궁극이 다다르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존재는 생성하고 소멸한다. 소멸을 바탕으로 생성이 일어나는 끝없는 순환의 지점에서 의식의 자리는 어디까지일까?
새벽의 고요 속에서 지구를 딛고 별과 달을 마주하며 느끼는 그 숭고한 순간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